[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가고, 또 다른 봄날이 온다. 오감의 소파

 

 

 허진호 | [봄날은 간다] | 스타맥스 | 2008

 

평생 ‘보통으로 좋아하는 영화 여러 편 보기’ ‘정말 좋아하는 한 편의 영화만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쪽을 선택하겠는가? 난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평생 봐야 할 그 단 한 편의 영화를 고르라면 아마 <봄날은 간다> 이 영화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영화만큼 수 번 본 영화는 없었다. 정확히 손꼽아 세어보지는 않았어도 스무 번 가까이 본 것만은 확실하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을 때처럼, 영화를 보는 나이가 한 해 두 해 늘어감에 따라 볼 수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달라졌다.

 

 

 

 

열여덟, 막 개봉한 [봄날은 간다]를 보러 교복을 입고 친구와 극장에 갔다.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던 때였다. 지금 생각하니 무엇을 기대하고 그 영화를 보러 갔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유지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돌아올 옛사랑도 없는 주제에 “이 영화 보고 옛사랑에게 돌아간 사람들이 많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재잘대며, 상영관의 불이 꺼지길 기다렸다. 두 사람이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는 침을 꼴깍 삼켰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상영관의 불이 켜지고 극장 밖을 나서며 두 여고생은 입을 모아 “뭐야, 이영애 나쁘다! 유지태가 불쌍해.”라고 투덜댔다. 사실, 이해가 잘 안 됐고 조금 지루했다. 그래도 유지태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하는 대사는 열여덟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사랑은 변한다.

 

스물, 왜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폐업하던 비디오 가게에서 몇 천원을 주고 테이프를 샀다. 툭하면 모두가 잠든 밤에 비디오를 틀고 봤다. 한 번, 두 번 볼 때마다 열여덟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애틋한 장면들이 늘어났다. 회식하던 중에 바깥으로 나와 쪼그리고 앉아서는 전화로 “나도 보고 싶어요.”라던 상우(유지태), 그 길로 택시를 타고 강릉까지 온 상우에게 매달려 안기던 은수(이영애), 대숲에서 산사에서 또 바닷가에서 소리를 채집하던 장면들, 헤어지자고 해놓고 별안간 나타나 보고 싶었다며 상우를 골목길로 이끌어 까치발을 들고 키스를 하는 은수, 다른 남자와 여행을 간 은수의 자동차를 열쇠로 긁어버리는 상우, 벚꽃이 흐드러진 길에서 악수를 하고 헤어지던 두 사람.

 

스물이 되자 “은수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깟 김치 좀 담가주면 어때서, 떨어져 지내자며 쌀쌀맞게 전화 받을 땐 언제고 왜 다시 돌아와서 상우를 뒤흔들어 등등. 난 아직 상우 편이었다. 은수를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숫되었다. 한편, 소년의 얼굴에서 남자의 얼굴로 바뀌어가는 상우를 발견했다. 마냥 해사하게 웃고, 은수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면서 싫은 소리 한 마디 못 하던 그가 거절을 표하던 때에 남자가 된 걸 알았다.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갈대밭 속에서 조금 수척해져 웃던 상우는 사랑을 겪어낸 어른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물여덟, 아직도 이따금씩 그 영화를 본다. 언제부터인가 상우의 오롯한 마음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맹목적인 순수가 부담스러웠다. 어느새, 은수가 이해되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 가을을 보내고 또다시 봄을 맞이하는 동안, 둘은 열심히 사랑했고 열심히 미워했다. 누가 누구를 먼저 저버렸느니, 누가 더 마음을 주었느니 하는 말은 다 별무소용이다. 그 안에 머무른 이들은 충분히 행복했고 아팠고 자랐다.

 

우리의 봄날은 갔다. 눈부시던 꽃들은 지고, 향긋한 내음도 사라졌다. 하지만 봄의 찬란을, 꽃의 영광을, 봄볕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 계절이 어딘가에 붙박이지 않는 한, 또 봄은 온다. 그 봄이 아닌, 또 다른 저 봄이 올 것이다. 그러니 너무 서운해 마라. 새로운 꽃과 낯선 내음이 저 봄을 채울 것이므로.

 

- 컨텐츠 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