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 환영(幻影)이 사라지고 손에 잡히는 삶이 올까 블로거, 책을 말하다

 

 

김이설 | <환영> | 자음과 모음 | 2011

 

세상은 날로 잔혹한 뉴스를 들려준다.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갓난 아이가 발견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생활고를 위해 몸을 파는 일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사는 사회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삶,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소설 <환영>의 '윤영'도 마찬가지다. 그저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를 닮은 아이를 낳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그게 그녀에게는 너무 큰 소망이었을까. 모두 윤영만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하는 남편, 며느리 대접을 해주지 않는 시댁,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던 아버지, 윤영에게 모든 걸 떠맡기고 남자를 택한 친정 엄마, 노름에 빠진 동생까지 말이다.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 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따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58-59쪽 )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아이를 키워야 했고, 공부하는 남편에게 부담을 줄 수 없었다. 그런 남편과 아이가 그때는 희망이었다. ‘왕백숙’으로의 출근은 그렇게 시작했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멀리 시 외곽의 한적한 곳까지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안채와 별채는 다른 세상이었다. 별채는 닭백숙이 아닌 욕망을 파는 곳이었고, 음식을 나르고 벌 수 없는 돈이 주어졌다. 악을 쓰며 돈을 해대라는 동생의 입을 막을 수 있고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돈이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아이 생각을 하면 어디선가 녹슨 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를 따르지 않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분했다. 어린것에게 어미로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떨어져 지내니 그런 생각은 들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웠다. 그런데도 가볼 생각을 못 했다. 나도 아이가 두려웠다. 아이가 나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었다."
(124-125쪽)


윤영에게 삶은 진흙탕을 건너는 일이었다. 온 몸에 진흙을 묻혀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겨우 빠져 나왔다 싶어 마지막 발을 꺼내려 몸부림 쳐도 발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단 하루도 마른 땅을 밟을 수 없는 깊은 수렁들. 언제 끝이 날까, 다른 길은 없을까, 아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는 걷지 못했고 일자리를 얻어 나간 남편은 사고를 당했다. 윤영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한데,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엄마였기 때문일까.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193쪽)

소설의 마지막 문장, 다시 왕백숙집 여자로 출근하는 윤영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비장한 이 말이 비참하게 다가온다. 누가 세상이 살만하다 말하였나. 누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뜻 그녀를 응원하기도 겁나는 게 사실이다. 윤영에게 삶은 환영(幻影)을 보는 일은 아니었을까.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은 것 말이다. 환영(幻影)이 사라지고 손에 잡히는 삶을 그녀가 살아갈 날이 올까. 온다면 언제일까. 


작가 김이설은 <나쁜 피>,<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이어 <환영>에서 더 냉정하고 잔혹해졌다. 간결하고 강한 문장으로 사실적이고 노골적으로 폭로한다. 더 깊이 파헤쳐 그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해서 읽는 이는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누군가는 왜 이리 잔인하고 혹독하냐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등단작 '열세 살', '엄마들'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주목하는 삶은 변두리 이하의 삶이며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삶이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도록 신이 만든 존재다. 이들을 통해 작가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피하고 싶은 삶이 누군가의 삶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목련'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