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상자> - 말 없는 그림책의 목소리 책, check, 책

 

데이비드 위즈너 | <시간 상자> | 베틀북 | 2007

 

책장을 넘기자 눈이 시원해지는 바닷가 그림이 나온다. 소년이 한 손으로 삽 같은 걸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닷물 속에서 무언가를 건지고 있는 듯하다. 다음 장으로 넘기자 작은 소라게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고 그 뒤로 소라게를 보고 있는 사람의 눈이 보인다. 빠르게 몇 장을 더 넘겨 본다. 끝까지 페이지를 펼쳐본다. 책에는 ‘내용’이라고 할 만한 글이 하나도 없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와 조금 전보다 천천히 그림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노닐던 소년은 갑작스러운 파도에 밀려온 수중카메라를 발견한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살피다 필름을 찾아내고 사진관에 맡긴다. 인화된 사진 속에는 신기한 바닷속 풍경이 펼쳐져 있다. 문어 할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배를 잔뜩 부풀린 복어는 물고기들을 태우고 기구가 되어 날고 있다. 무수한 바다 사진 속에 딱 한 장, 사람이 찍힌 사진이 있다. 

 

 

한 소녀가 손에 사진을 들고 웃고 있다. 소녀가 들고 있는 사진 속에는 소년이 사진을 들고 있고, 역시 그 사진 속에는 다른 소년이 사진을 들고 있다. 거울을 마주보게 하면 거울 속에 여러 개의 상이 생기듯이 사진 속에는 여러 소년 소녀들의 모습이 찍혀 있다. 몇 명이 찍혀있는 건지 궁금해진 소년은 현미경으로 사진을 탐색해본다. 컬러 사진은 흑백사진으로 바뀌고 아이의 옷차림은 점점 과거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년은 카메라에 새 필름을 넣고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백, 혹은 수천 명의 아이들이 담긴 사진을 손에 들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수중카메라를 다시 바다에 멀리 던져 떠밀려가는 파도에 실려가게 한다. 수많은 바다 동물들이 이리로 저리로 운반하던 수중카메라는 어느 날, 한 소녀에게로 가 닿는다.


단 하루도 말, 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늘 언어를 의심한다. 내가 하는 ‘말’은 네가 듣는 ‘말’과 같지 않다. 서로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이는 스스로뿐이다. 또 눈이 부신 아름다움이나 가슴 저미는 슬픔을 언어로 환언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지만 오해와 오독, 오역 속에서 생겨나는 의미도 분명 존재가치가 있다. 개인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간 상자’의 데이비드 위즈너는 독자들이 바로 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길 원한다.


"글자 없는 그림책의 작가로서 나는 각각의 세부 내용이 저의 생각과는 달리 해석되는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비록 저의 책들이지만, 그림 속에 제시된 저의 관점은 오로지 제 것이고, 독자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도 읽히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제가 책을 통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웃을 수 있고,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완벽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는 않습니다. 마치 영화 필름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서 하나의 스토리로 전개되는 것처럼 그림의 이미지들도 플롯의 정연한 논리를 갖춰 잘 짜여지도록 하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은 ‘시간 상자’에서 대개가 비슷한 이야기를 보겠지만, 아이들은 실제로 저마다 굉장히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글이 없는 동화책, 혹은 그 반대로 그림이 없는 동화책이야말로 아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와 자신만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보고일 것이다. ‘시간 상자’는 글자 하나 없는 그림책이지만 따뜻한 톤의 그림은 정밀화처럼 섬세하고 마치 영화의 컷들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말 없는 그림책을 오래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속의 나직한 목소리가 소곤거리며 제 얘기를 들려준다.


+
‘시간 상자’에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몇 곳에서 재미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찾은 두 개의 숨은 그림 중 하나는 수중 카메라의 이름이 멜빌이라는 것이다. 렌즈 위에 ‘Melville’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오랜 시간 바다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경> 등의 작품을 쓴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을 연상시킨다. 또 가장 마지막 페이지의 앞 쪽에 그려진 파도 그림은 일본 우키요에 화가인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 <카나가와의 큰 파도>와 닮았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