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되는 길 블로거, 책을 말하다

 

고미숙 | <동의보감> | 그린비 | 2011 

 

편작(扁鵲)은 명의(名醫)의 대명사였지만 정작 그의 집안에서는 하수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병이 극심하게 진행된 환자들을 치료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편작보다 고수인 이는 불치병을 훨씬 더 많이 고쳤을 것인가. 하지만 실상은 이와 정반대다. 편작의 작은 형은 병의 초기단계를 치료하는 아마추어 의사였고 작은 형보다 더 고수인 큰 형은 병이 걸리기 전, 즉 미병(未病)단계에서 치료를 하여 굳이 의사라고 불리지 않았다. 

고미숙의 <동의보감>을 읽었다. 고미숙은 앎의 고수다. 앎의 고수가 <동의보감>을 읽고 리라이팅을 했다는 것은 앎의 경계를 넘나듦을 의미한다. 비록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자신과 무관하다면 여전히 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고미숙은 그 경계에서 <동의보감>을 놀라운 텍스트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편작의 형들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병을 고친다는 것은 미병단계, 즉 초기단계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게 살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건강이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精神)은 어떤가? 마음은 건강해야지 하면서도 몸은 그대로다. 그런가 하면 몸만 생각한 나머지 정신을 소홀히 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다. 그러나 동양 사상에서 정신은 원래 하나였다. 정은 생명의 물질적 토대, 신은 물질을 움직이는 무형의 벡터였다. 정신 차려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은 생명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동의보감>을 편찬하는 취지를 살펴보면 ‘사람의 질병은 모두 섭생을 잘 조절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것이니 수양이 최선이고 약은 그 다음이다.’라고 했다.<동의보감>은 단순히 질병과 처방을 다루는 임상서가 아니라 수양과 섭생을 우선으로 하는 양생서(養生書)였다. 그래서 저자는 내경(內徑)-외형(外形)-잡병(雜病)-탕액(湯液)-침구(鍼灸)로 이어지는 5편 106문 목 차는 다른 어떤 의서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분류학의 결정판이라고 했다. 

이러한 분류에서 인간의 몸은 우주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이 곧 우주이다. 「내경편」의 신형(身形)을 보면, 하늘의 형은 건(乾)에서 나오니, 태역(太易),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가 있다. 태역은 기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고, 태초는 기가 시작하는 것이며 태시는 형이 시작하는 것이고, 태소는 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신형은 몸의 형태라는 것인데 우주가 창조되는 순간부터 시작하고 있다. 우주는 기-형-질의 순서에 따라 구체화된다. 그리고 사람의 몸 역시 기를 바탕으로 해서 생명의 원천인 정·기·신이 만들어진다. 
한편으로 기·형·질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질병도 함께 탄생한다. 즉, 형기가 갖추어진 다음에 아(?)가 생긴다. 아란 채(?)이고, 채란 병(病)을 말하는 것으로 병이 이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태역으로부터 생기고 병은 태소로부터 생긴다.(「내경편」, 신형)

<동의보감>이 말하는 질병의 진행과정은 아-채-병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아는 원초적 불균형을, 채는 스트레스와 과로에 가까운 피곤한 상태를, 병은 피로함이 심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질병은 특수한 고통과 결여의 상태가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수반해야 할 필연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아파야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양생을 할 수 있을까? 양생의 규칙을 몇 가지 살펴보면 먼저 태과불급 (太過不及)이 아니어야 한다. “기가 실하면 형도 실하고, 기가 허하면 형도 허한 것이 정상이다. 이것과 반대면 병이다.”(「잡병편」, 변증) 형과 기는 서로 어울러야 한다. 그런데 태과, 즉 넘치는 것인데 좋은 기운(정기)이 나쁜 기운(사기)이 된다. 불급, 즉 모자라는 것인데 정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통즉불통(通則不痛)이다.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통의 경계는 몸과 마음, 몸과 몸, 몸과 사회, 몸과 우주 등등 무궁무진하다.

수승화강(水昇火降)도 간과할 수 없다. 오장육부는 음양오행이자 사계이며 상생이자 상극이다. 오장육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심장과 신장이다. 심장은 군주지관이며 오행으로는 화(火)다. 신장은 정을 저장하며 오행으로는 수(水)다. 자연계에서는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간다. 하지만 우리 몸은 대대(待對)의 원리에 따라 그 반대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곧 수승화강이다. 만약 수승화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음허화동(陰虛火動)이 된다. 심장의 불이 제멋대로 망동하게 된다.

이렇듯 저자는 <동의보감>을 재해석하면서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몸과 우주는 앞서 말했듯 동양사상의 키워드다. 몸과 우주는 상생 혹은 상극으로 순환한다. 모든 것은 관계의 서사다. 그러면 삶의 비전은 뭘까? 그것은 바로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는 것, ‘내 안의 타자들을 긍정하는’ 것, ‘자기의 욕망을 스스로 조율하는 자기수련’이다. 병이 있다고 해서 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새롭게 ‘호모 큐라스’가 되는 것이다. 한 번쯤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吾友我’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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