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한 가지 모델 블로거, 책을 말하다

 
작년 전세계가 주목했던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였다. 신자유주의적인 금융 지배에 대한 불만이 월스트리트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극적으로 표출된 이 시위는 작년 9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전세계로 번져나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여의도를 점령하라’라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5개월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이 시위는 최근 강경한 진압과 추워진 날씨로 인해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가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불거져 나오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이 시위가 겨냥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이는 시위대가 내놓은 대표적 구호인 “우리는 99%(We are 99%)”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와 99%,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 즉 사회적 양극화는 계속 극대화되고 있는데 이를 적절히 교정할만한 변변한 장치가 하나도 없는 현실일 것이다.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실질임금은 점차 하락하여 평범한 시민들의 삶은 계속 괴로워져가고 있는데,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을 들여 쓰러져가는 기업을 살려주었더니 그들은 그 돈으로 보너스 잔치를 하고 있고,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규제할 제도적 장치는 하나도 없는 현실. 이러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고 묵묵히 쳐다보고 있기란 힘든 일인 것이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한미 FTA의 비준으로 인해 앞으로 점차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우리사회에 확산된다면 우리 역시 동일한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작년 말 한 경제신문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가계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경제고통지수’가 2011년에 역대 3번째로 높았다고 한다. 작년보다 높았던 두 번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연초 한 해 전망을 다루는 기사들을 보면 역시 중산층 붕괴로 인해 신빈곤층이 확산되리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진심이건 아니건 혹은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하건 간에 ‘복지’를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복지 정책을 잘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작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무상급식 논쟁에서 경험한 바 있듯이 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 정치사의 단골 메뉴인 이념 논쟁도 뜨겁게 불거져 나올 것이다. 그 결과 과거 여러 많은 개혁 법안과 민생 법안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 누더기가 되거나 책상 서랍에 고이 잠들어 있다 폐기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과 그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이 복합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그포르스의 정치경제학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이 빛을 발한다. 다소 낯선 이름의 이 사람은 대공황 이후의 경제 위기와 좌파/우파 간의 갈등이라는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스웨덴의 복지 체제를 안착시킨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이 책은 비그포르스의 사상을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인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이념 지향과 ‘나라 살림의 계획’이라는 실천 방식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과 그러한 사회에 이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다.

먼저 왜 ‘잠정적’ 유토피아인가? 비그포르스가 보기에 많은 사상가들이 현실의 모순과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이상향들을 제시해 왔지만, 그러한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구체적 시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적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는 결코 윤리적 열망과 희망 사항만으로 무책임하게 시도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마음속에 바라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른다고 해도, 정말로 그것이 실현 가능한지, 그리고 우리가 애초에 열망한 바를 정말로 만족스럽게 실현할 수 있는지는 직접 시도해봐야 알 수 있다.” (335쪽) 그는 과학에서 작업가설을 설정하고 실험과 검증을 통해 가설을 폐기, 수정, 보완, 재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개혁도 시시각각 변화되는 현실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유토피아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는 항상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점진주의적 관점과 무엇이 다른가? 비그포르스는 사회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밑그림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부분을 보수하는 땜질식 처방은 안 된다는 것이다. “비그포르스가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핵심 가치로 꼽은 것들은 평등,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불안에서의 해방, 경제에 대한 의식적 통제를 통한 더 효율적이고 증대된 생산 등이었다.” (328쪽) 이처럼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확고한 방향 설정과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의 실험과 검증, 이 두 가지의 결합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 살림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 성원들 전체에게 인간적 존엄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삶의 물질적 기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회 전체 차원에서의 산업 생산이 가장 합리적 · 효율적으로 조직될 수 있도록 ‘안배’하는 모든 장치와 제도와 정책을 총칭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상업 기술과 사회적 상태를 감안해 시장 경제에서 국유 기업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제 형태와 제도 정책을 배합” (363쪽)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앞서 소개한 ‘잠정적 유토피아’를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제적 실험들의 조합이 바로 ‘나라 살림의 계획’인 것이다. 저자는 비그포르스가 이와 같은 두 축을 바탕으로 1930년대 스웨덴이 처한 상황, 즉 대공황 직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좌우간의 갈등의 심화라는 난국을 돌파해 나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책은 비그포르스가 살았던 당시 스웨덴의 구체적 상황과 그 상황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그의 방식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1930년대의 스웨덴과 2012년의 한국은 겉보기엔 대략 유사해 보이지만 세세한 구체적 상황과 조건은 매우 다를 것이기에 당시 스웨덴에 유효했던 방식이 우리에게도 유효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고 있고 그러한 사회가 스웨덴이 이룩해놓은 모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 나아가 “평등,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불안에서의 해방”과 같은 비그포르스의 전망에 동의한다면 이를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버릴 순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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