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맛] 김유진,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단편소설의 맛



특정 상황이 읽고 있는 책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너(책)에게 투사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너의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연애 중인 이들이 ‘사랑 노래를 들으니 다 내 얘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작년 여름, 저는 그런 책을 읽었는데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숨을 거둔 할아버지의 장례식, 발인 이후 집에 머물었던 며칠 동안이었습니다. 김유진의 《숨은 밤》이라는 소설. 표지에 이끌려 아무런 정보 없이 구입한 책이었습니다. 《숨은 밤》은 서점을 나선 후 부고를 듣자마자 고속터미널로 내달렸던 저를 뜻하지 않게 따라왔습니다. 그날부터 긴 독서가 시작되었습니다. 술술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삶과 죽음의 형상을 말하는 소설이었고, 저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쉽지 않았던 것은 김유진의 방식이었습니다. 이야기의 근간이 서사라면 독자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따라갑니다. 보통은 그런 소설에 익숙해져 있지요. 김유진은 달랐습니다. 삶의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풀어 놓습니다. 순간을 늘이거나 대화를 압축하지 않습니다. 플롯 같은 것도 빌려오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앞선 과거 같기도 한낱 꿈같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손쉬운 외피를 입지 않은 날것의 감정은 고스란히 직격탄이 되었고, 저는 그만큼의 마음을 투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347쪽)

언니는 곧 육교를 향해 가볍게 뒤돌아서 갔다. (358쪽)

《문학동네 2011 여름 (67호)》중에서

 
힘들어, 힘들어 죽겠다고! 《숨은 밤》으로 몇 권 분량의 감정을 소모하자 다른 소설을 읽어 볼 엄두를 못 내겠더군요. 하지만 독서는 순환의 궤를 그립니다. 저는 돌고 돌아, 한 문예지에서 김유진의 자전소설을 접했습니다. 《숨은 밤이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만 모아 둔 봉지라면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는 모서리가 마모된 조각들 같습니다. 그럼에도 무심코 가져간 손끝에 피가 묻어나는 것은 왜일까요. ‘한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뒤돌아서 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첫 문장의 사유와 마지막 문장의 회상 사이에는 두서없고 나른하며 무심하기까지 한 감정이 흐릅니다. 화자는 도통 자신의 심정을 꺼내 보이지 않지만 이 조각들을 만지고 있자니 조금은 알겠습니다. 김유진이 느꼈을 슬픔, 말하고 싶은 죽음의 모호함을요. 삶과 죽음의 문제는 결국 선명하게 만져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다.’(358쪽)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글쓰기 방식은…… 일단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을. 근데 제가 구상이라고 하는데 뼈대를 적어 놓는 거라면, 저는 포인트로 찍고 싶은 문장들을 적어 놓는다거나, 그러니까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보다는 그런 쪽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제 안의 논리가 있죠. 이미지의 논리라거나 문장의 논리 같은 것들을 따라가기 마련이죠. (…) 서사를 따라가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근데 이 책을 너무 쉽게 읽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신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잠시 버려두고) 편안하게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을 약간 버린다면 다른 재미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 : 문장웹진 11월호)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김유진
1981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 <늑대의 문장>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늑대의 문장》, 장편소설 《숨은 밤》이 있다.

* 현재까지 발표 작품
《늑대의 문장》 | 문학동네 | 2009
《숨은 밤》 | 문학동네 | 2011

<눈 위의 발자국> |《사랑해 눈》 게재
<희미한빛> |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게재
<여름> |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게재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 《문학동네 2011 여름 (67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