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 이 손잡이는 손잡이가 아니야 책, check, 책

 
책상에 하얀색 머그컵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컵을 들었다가 놓는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다. 정수기 맹물보다 이왕이면 차(茶)를 택한다. 티백을 넣고, 손잡이 실과 컵 손잡이를 동시에 잡는다. 뜨거운 물을 받을 차례다. 한손이 묵직해진다. 무게가 실려 손잡이 실이 컵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손잡이 실을 컵 손잡이에 감는다. 컵 손잡이에 묶인 손잡이 실은 손에 잡혀 있기보다는 고정된다. 손잡이 실이 묶인 컵 손잡이는 티백의 지지대가 되어 준다. 이 순간, 손잡이는 또 다른 기능을 얻었다. 내가 무엇을 보태기라도 했나. 이것은 발명이 아니다. 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컵의 비유는 이 책의 머리말에도 등장한다.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이랄 수 있는 컵을 디자인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 하라 켄야는 “디자인해야만 하는 대상으로서의 컵이 당신에게 주어지자마자, ‘어떤 컵을 만들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컵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컵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이전보다 컵에 대한 인식이 후퇴했다고 할 수는 없”으며, “더 ‘현실적인 존재로서의 컵’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의 디자인》의 결론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디자인, 그 부산물은 모두 현실이므로. 초반부에서 너무 속단하는 것 같다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자본주의는 이러한 ‘돈’ 혹은 ‘부’를 손에 넣기 위해 세계에서 모두 통하는 규칙과 같은 것이다. 그런 규칙이 사업을 일으킨다든지 수익을 올리는 것에 아주 익숙한 나라들에 의해서 조절되며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소위 세계화이다. 문제로 삼아야만 하는 경제 격차를 오히려 전제 조건으로 간주하여 그곳에서 이익을 만들어 내는 구조를 가져온다. 지금 우리는 미래에는 분명히 규탄 받게 될 불평등한 시대와 사회를 살고 있다. (144쪽)

하라 켄야는 자본에 이용되고 상품으로 소비되는 디자인을 우려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디자인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자본을 따라가고 상품을 돋보이게 하잖아?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19세기 산업혁명에 대항하는 예술운동이 그 시초였다. 그랬던 것이 현재에는 산업과 영합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불식하는 대안으로 하라 켄야는 ‘리디자인-일상의 21세기’ 전시 기획, 마츠야 긴자 백화점 및 우메다 병원 디자인 디렉팅,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 자문위원으로서의 활동을 소개한다. 사례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나 이 책의 요지는 단순하다. 현실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따라가지 말고!

디자인은 단순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지금껏 살펴본 역사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디자인이다. 사람이 살아 있어야 환경이다. 그것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시선 저편에 테크놀로지의 미래나 디자인의 미래가 있다. (36쪽)

《디자인의 디자인》은 문외한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디자인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자본을 따라가고 상품을 돋보이게 하잖아?’라는 말에 일조한 사람은 누구보다 사용자다.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하는 것은 디자이너만의 몫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이 있을까. 스스로 물어 본다. 하얀색 머그컵을 든다. 티백의 손잡이 실을 풀어낸다. 이 순간, 컵 손잡이와 손잡이 실은 손잡이로서 기능한다. 차를 다 마시고 티백을 버린다. 하지만 손잡이는 때로 손잡이가 아니라는 발견만은 남았다. 나는 목격했다. 어쩌면 답은 나와 있는 듯하다. 목격자. 그것은 진화한 사용자의 다른 이름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