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맛] 정용준,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단편소설의 맛

“내게 가장 익숙한 인격인 불면의 두려움과 친근함의 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모든 소설을 새벽에 썼다”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 이름하야 정용준. [단편소설의 맛]에 쓰려고 좀 아껴두었습니다. (이런 소설 여럿 됩니다. 궁금해 죽겠죠? 그럼 격주 금요일마다 스크롤 고정!) 어느 날 문득 ‘아니 이런 소설이?’ 하며 급궁금(?)해지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단행본 출간 소식을 알고 ‘아니 벌써?’ 하며 흐뭇해지는 쪽이 있습니다. 정용준은 후자였어요. 이 작가가 여러 계간지에 발표한 작품을 꾸준히 접해 온 저로서는, 단행본 소식이 유난히 반갑더군요. 《가나》는 작년 11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는 그 단행본에 실린 작품으로, 《2012 젊은소설》에 재수록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도 흐뭇한 일입니다만, 정용준 소설을 흐뭇하게 읽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이 작품은 어떨까요?
 

다음 달이면 만 스물세 살이 되는 사라의 배가 조금씩 부풀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사라와 그의 가족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235쪽)

안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장 많이 또 깊이 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많이 생각한 마음이다. 내 모든 것을 지금 멈추겠다. 사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261쪽)

《2012 젊은소설》중에서

 
첫 문장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미혼의 여자애(‘여자’보다 ‘여자애’로 느껴졌습니다.)가 임신을 했다. 끝나는 문장은 감이 잘 안 잡히실 텐데요. 부연 설명을 하겠습니다. 소설은 임신한 여자애를 둘러싸고 그녀 자신,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의 내면을 차례로 조명합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추측컨대 태아의 목소리입니다. 누구보다 연약한 상태인 이 존재는 여자애가 느끼는 혼란을 누구보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앞서 사랑을 앞세워 본인의 입장을 정당화했던 가족들과는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이 대목에서 그동안 믿어 온 가치, 상식, 이상이 흔들립니다. 저는 불편합니다. 이것은 불쾌함과 다릅니다. 이 감정은 처음이 아닙니다. 정용준의 다른 소설을 읽을 때에도 느껴 본 것이지요.

정용준은 ‘친근한’ 재료를 선택하나 ‘두려운’ 요리를 만듭니다. 잘 아는 장애, 잘 아는 사랑, 잘 아는 고립은 그의 부엌에서 변모합니다. 완성된 요리는 과연 우리가 모르는 맛일까요? 저는 모르고 싶은 맛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풍경의 대부분은 사실 직시 가능한 시야에 있습니다. 그것을 보게끔 이끄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라면, 정용준은 적어도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독자의 직무는? 이 불편함을 기꺼이 공유하는 것이겠지요. ‘작가의 말’을 아래 덧붙이며 물러갑니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를 읽는 데에 도움을 줄 거예요.

사랑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믿음을 의심한다.
사랑에 대한 의심이 아닌 사랑의 방식에 대한 의심이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는 사랑에 대한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랑을 포기한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랑의 방식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사랑은 불가능한 방식으로 끝이 난다.

어쩔 수 없었다.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사랑을 아름다움으로 배운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정용준
1981년 광주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졸업. 2009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으로 《가나》가 있음. ‘루’ 동인으로 활동 중.

* 현재까지 발표 작품
《가나》 | 문학과지성사 | 2011
- 아래 작품들은 위 단행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K에게> | 문학웹진 뿔 ‘단편소설 릴레이 연재’에 게재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2012 젊은소설》 게재

<떠떠떠, 떠> |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게재

<가나> |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