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일기》 - 왜 사냐건 웃지요 책, check, 책


“이런이런 일이 있었지. 참 힘들었어.”
“나는 매일 울었어. 저런저런 일 때문에.”
“그런그런 일은 어떻고? 죽고 싶더라.”

이 대화에는 ‘술자리의_흔한_대화.jpg’이라는 확장명이 어울릴 법하다. 유사한 자리에서 누군가는 청자 역할을 했거나, 화자가 된 적도 있겠다. 사람들은 이렇듯 불행을 자랑처럼 말할 때가 있다. 이런 경험담은 전리품과 그 속성이 닮았다. 전쟁이 끝나고 생존한 후에야 기념이 되는 물건처럼 고통의 시간 이후에나 이야기로 거듭나는 것이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에는 문자 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뿐. 《실종일기》에도 그런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 등장한다.

1989년, 한 남자가 사라진다. 그러니까 실종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발(적 범죄)보다 자발이라고 불러야 맞다. 스스로 가출한 이 남자는 《실종일기》를 그린 아즈마 히데오다. 그는 이때를 “1989년 11월, 난 출판사가 의뢰한 원고를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일 하기 싫어’ 병, 그리고 숙취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회고한다. 그날부터 아즈마 히데오는 복귀와 실종을 반복하고, 자살 기도와 노숙을 일삼고, 배관공 생활로 삶을 연명하고, 알코올 중독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힌다. 밑바닥 인생이 따로 없다. 만약 지인의 근황이라면 꽤 심각한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화 속 이 남자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 남들이 버린 음식을 주우러 다니는 중에도 눈이 없어져라 방긋 웃고, 환각 증세로 고생하는 시절에도 눈물 한 방울을 우스꽝스럽게 매단 얼굴로 그려져 있다. 이쯤 되면 불행을 즐겼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와 관련하여, 끄트머리에 실린 ‘권말대담’은 후일담을 들려주고 있다.

문 / 그려진 내용은 충분히 비참한데 딱히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그 미묘한 거리감이, 읽고 있자니 정말 재미있더군요. (…) 아즈마 씨의 만화는 시점이 예전과 변하지 않고 쿨하네요.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이 변함없다고 할까요. 자신을 냉정하게 개그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답 / 자신을 제3자의 시점에서 보는 건 개그의 기본입니다.
문 / 실종 당시에도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실 수 있던가요?
답 / 아뇨, 그런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웃음) 얼어 죽는 줄 알았거든요. (웃음) 한 주 동안 잠을 못 잤으니. 실종에서 돌아와 이걸 소재로 써 볼까 생각해서 “얼어 죽는 줄 알았다.”라고 노트에 적어 두었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거기에 마누라가 “난 더 비참했어요.”라고 써 놓았더군요. (일동 폭소)

아즈마 히데오는 그러니까, 지나왔다. 이 만화의 목차인 “밤을 걷다”, “거리를 걷다”, “알코올 중독 병동”을 빌려 말하자면 밤거리와 중독의 시절을 지나왔다. 그리하여 과거에 대해 제3자가 될 수 있었다. 인생 그 자체였던 것을 불행 한 단어로 부를 수 있었다. 시종일관 쿨해 보이는 만화 속 얼굴은 현재의 자화상이 아닐까. 이제 그는 웃는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가능한 한 리얼리즘을 배제한 채로 그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실종일기》는 비로소 이야기가 되었다.

입꼬리를 조금 위로 당겨 본다. 이 순간의 나를 짓누르는 불행도 언젠가는 ‘술자리의_흔한_대화.jpg’가 될 것이다. 그럼 나는 연습한대로 웃어 주겠다. 이야기도 해주겠다. 하지만 지금은 문자 그대로 지금이다. (웃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쟁이 아닌가, 인생이란.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