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 살고 죽는 이야기들 책, check, 책

김유진 | 《여름》 | 문학과지성사 | 2012


말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나무에 열매가 맺히거나 어항 속 물고기가 사라지는 일 따위. 생멸(生滅)을 설명하기에 문자는 배타적이다. ‘생멸’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무엇도 이 말과 무관하지 않은데 일상이 걸러진다. 머릿속에는 장례식 정도만 그려질 뿐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는 문자와 대상 간의 벽을 넘나든다. 이 형식을 빌려 ‘살았다’나 ‘죽었다’가 아니라 ‘나무에 열매가 맺혔다’나 ‘어항 속 물고기가 사라졌다’라고 쓰는 이들이 있다. 바로 소설가다. 그들 각자는 화법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이야기도 저마다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나무에 열매가 맺혔다’를 ‘나무에……’라거나 ‘열매다!’라고 쓸 수 있다. 이렇듯 무수한 이야기가 있는데 널리 알려지는 쪽은 일부에 불과하다. 반대로 잘 읽히지 않는 소설의 경우, 이유는 대개 두 가지일 터. 그만한 가치가 없거나 그만큼 공들여 읽어야 할 소설이거나. 나는 후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김유진의 《여름》이 그렇다. 추천 좀 해줘! 소설 깨나 좋아한다는 사람이 물어오면, 종종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되물었다. 어땠어? 반응은 비슷했다. 음, 하며 대답에 뜸을 들이는 것이다. 호불호의 이분법으로는 누구도 쉽사리 평하지 못했다.  소설이 어려운 게 아니냐고? 난해한 것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모호하다고 할까. ‘모호하다’는 표현이 소설에 줄곧 등장하는 만큼, 그녀는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옅은 것, 미묘한 것, 그러나 이곳에 있는 것”과 같이 이름 없는 인물들의 세계를 구현한다. 그 세계에는 존재 의미를 극대화하는 사건 혹은 서사가 없다. 다만 <바다 아래서, Tenuto>의 ‘K’와 <희미한 빛>의 ‘나’처럼 사사로운 감정의 융기를 거듭하거나, <여름>의 ‘Y’나 <우기>와 <눈은 춤춘다>의 ‘나’처럼 멀어져 가는 (애초부터 먼) 타인을 생각하거나, <A>와 <물보라>의 ‘나’처럼 스스로의 상태를 좀처럼 입에 담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은 일견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마지막 순서에 실린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에서 나는 그 이유를 확인한다.


“나는 오랫동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에는 《여름》에 실린 단편 중 유일하게 이니셜이 아니라 ‘선희 언니’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선희 언니’는 ‘나’의 가족이 유년 시절 신세진 큰고모의 딸로, 장성해서는 “줄곧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선희 언니’의 과거사는 ‘나’의 유년 시절, 큰고모 집 앞마당의 무화과나무, 어머니의 노화를 묘사하는 가운데 뒤섞여 있다. “한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는 것도, 유랑민처럼 여러 곳을 떠돌며 사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유년 시절, “나무는 살고 죽는 것이 분명”함을 알려준 무화과나무, “몸의 자연스러운 퇴행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선희 언니’의 죽음과 같은 궤를 그리고 있다. 결말에 이르러 ‘나’가 마지막으로 본 ‘선희 언니’는 “역에 다다른 기차처럼 서서히 이야기를 멈”춘다.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에서 생과 멸은 하나의 흐름이다. 나머지 일곱 편의 소설도 마찬가지를 말하고 있다. 감정이든 관계든 한 시절이든 살고 죽는다. 내가 느끼는 무력감은 당연하다. 그 흐름은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아주 모호한 종류라는 것을 익히 겪어왔기 때문이다.


일개 대상으로서 생멸이라는 문자의 벽에 나가떨어지기만 하는 삶은 가혹하다. 하지만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만든 것이 이야기라고. 덕분에 나는 이름 없는 인물들을 통해 삶으로 나아가고, 자기 안의 생멸을 본다. 그것은 더 이상 외벽이 아니다. 말해지지 않는 채로도 이 삶은  괜찮다. 이야기라는 대리인이 있으므로. 《여름》은 그 증명이자, 8년차 소설가의 세 번째 책이다. “작품집을 묶을 때면, 한 시절의 마디를 지나는 기분이 든다. 지난 3년간의 기록이다. 그동안 이십대에서 완연한 삼십대로 접어들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소설을 이제는 공들여 읽을 때도 되었다.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