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 - 상상하는 그 순간부터 책, check, 책


모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 1000명의 장래희망을 설문조사했다. 3위는 운동선수, 2위는 연예인, 1위는 압도적으로 공무원이었다. 이 나라의 예비 일꾼이 이렇게 많으니 각 정부 기관들은 참 좋겠다. 그저 빈정거리고 말기에는 꺼림칙한 결과다. 이 설문조사는 일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나, 현 세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청소년은 먹고 사는 일을 생각한다. ‘아니 벌써?’라며 놀라는 사람은 별로 없을 터. 자본이나 계급에 무심하면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른다는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공무원, 꿈꿀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소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것이 과반수의 장래희망이라니. 이 정도면 꿈이 아니라 다수결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나는 한 가지 원인을 꼽아 본다.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청소년, 그 대답에 박수를 쳐주는 어른들, 옳다구나 돈이 곧 너 자신이라고 부추기는 세상에 공통적으로 부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상상력이다. 청소년은 스스로의 욕망을 상상하지 못하고, 어른들은 청소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고, 세상은 돈 이외에 가치 있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를 타개할 방법이 있느냐고? 물론이다. 책을 읽는 것이다. 너무 당연했나. 들어 보시라. 어려운 책도 필요 없다. 소설과 같은 이야기책이면 된다. 모든 국민이 일 년 간 하루에 한 권, 아니 일주일에 한 권씩만 읽어도 세상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다름’을 상상한다. 그것은 곧 타인에 대한 공감, 이해, 존중으로 이어진다. 이 상상력 프로젝트에 가담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하겠다.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에도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시작과 끝이 없다. 열네 컷의 그림은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다. 컷마다 짝을 맞춘 각각의 글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한 남자가 불룩 솟아오른 양탄자를 향해 의자를 치켜든 그림(양탄자 밑에서)에는 “두 주일이 흐른 뒤 그 일은 또 일어났다.”라거나, 큰 배가 보이는 강가에 선 두 사람의 그림(토리 선장)에는 “그가 등잔을 세 번 흔들자 범선이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라고만 쓰여 있다. 처음에는 다 훑어보는 데 십 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거듭해 보시라. 수수께끼 같은 그림과 한 줄짜리 글 앞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어느덧 “린든 씨는 그 책에 대해 경고를 했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린든 씨의 도서관)의 시작, 혹은 “누군가 창문을 열어 놓고 나가자 그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3층 침실)의 끝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 영감을 주었고, 미국 청소년의 글쓰기 교재로도 활용되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저자 자신에게도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한 출판사 편집자에게 해리스 버딕에 대해 듣는다. 삼십 년 전, 한 남자가 미완성의 그림책 원고를 들고 편집자를 찾아왔다. 책으로 만들 만한지 봐 달라는 말을 남긴 남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편집자는 그림에 매혹되었으나 해리스 버딕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훗날 미완성의 원고를 보았던 이들이 상상해서 쓴 글을 읽은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이 책을 발표하며 “다른 아이들도 이 그림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처음으로 버딕의 작품들을 다시 그려 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상상력이 또 다른 이야기를, 이야기가 또 다른 상상력을 낳은 셈이다. 그리하여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는 독자에게 전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느냐고? 하나의 이야기를 상상하시라. 꼭 글을 쓰거나 뭔가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뭔가가 될 의무도 없다. “두 주일이 흐른 뒤 그 일은 또 일어났다.”와 같은 글에서 시작된 상상은 두 주일도 되지 않아 장래희망에 다다를 것이다. 비약이 아니다. 초등학생 1000명이 한 가지 질문에 저마다 다르게 답한다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설문조사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