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 - 안철수, 대선 관전을 위한 하나의 이정표 블로거, 책을 말하다


4월 총선은 많은 이들의 예상 혹은 기대와 달리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야권 단일화 열풍으로 인해 지난 18대보다 약간 줄긴 했지만 여전히 단독 과반수를 확보함으로써 기존 야권이 현 여권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의미한 대안이 되기 어려움을 확인했다. 이와 더불어 다소 잠잠해지고 있던 ‘박근혜 대세론’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 지지자들이 작년 9월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2011년 9월은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한 달이었다. 비유하자면 안철수라는 소행성이 한국의 정치판에 충돌하여 대규모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한 달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4년 내내 철옹성처럼 지켜오던 ‘박근혜 대세론’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무상급식 시행 여부를 둘러싸고 촉발된 논쟁이 이러한 거대한 충격을 야기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2011년 9월에 벌어진 대규모 지각변동을 네 명의 젊은 논객들이 분석한 책이다.

먼저 책 제목을 살펴보자. 아이폰 사용자에게 익숙한 용어인 ‘밀어서 잠금해제’란 대기 상태에 있는 시스템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완전히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새롭게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작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작동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출발선에서 긴장하며 자세를 갖춰 기다리는 주자들에게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란 우리 사회의 기저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떤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고, 안철수가 가진 무엇으로 인해 그 긴장이 활성화되어 표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흐르고 있던 긴장이란 무엇인가? 한 가지는 아마도 갑자기 등장한 안철수에 대한 높은 지지와 이를 받아 안고 시장에 당선된 박원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높은 불신과 혐오일 것이다. 사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 왔던 사람들이라면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실망과 좌절을 느낀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실망과 좌절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의미한 정치 세력이 부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맘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지지를 보내거나 아예 정치에 관심을 끊게 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자주 회자되는 ‘비판적 지지’, ‘선거란 차악을 고르는 일’, ‘정치적 무관심’ 같은 말들을 떠올려 보자.

이러한 현실에서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이미지에, 안정적인 기반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결단력과 그 도전을 결국 성공으로 이끌어 내는 현실적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엄친아’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의사를 밝히며 정치에 관심을 표명하자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지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치 현실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네 저자는 이 열광과 지지의 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길 권한다. 무엇보다 저자들은 안철수 개인에 대한 단순한 지지와 반대를 넘어 ‘안철수 현상’을 하나의 사회적 징후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안철수 이전에 흐르고 있던 긴장과 안철수가 가진 무엇이 그 긴장을 활성화시켜 표출되도록 만들었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네 저자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중의 욕망(이재훈), SNS의 등장으로 인한 매체 지형의 변화(김완), 정치공학적 관점에서의 안철수와 같은 존재가 할 수 있는 역할(한윤형, 김민하) 등 다양한 분야로 역할을 분담하여 분석을 시도한다.

먼저 한윤형의 글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각종 비평들을 재비평하는 메타비평의 형식을 취한다. 특히 안철수의 등장에 대한 부정적 시선, 즉 정당 정치를 파괴한다거나 신자유주의적 성공 신화의 다른 일면이라는 지적에 반대하며 ‘안철수 현상’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활용방안을 모색할 것을 주문한다.

이재훈은 각종 매체에 나타난 안철수의 발언들을 심층 해부함으로써 안철수의 열광하는 대중이 안철수를 통해 무엇을 욕망하고 있었는지를 역으로 분석한다. 그가 보기에 안철수에 대한 열광은 결국 “중간계급의 ‘엄친아’에 대한 욕망”에 다름 아니며, 이러한 성찰을 통해 거꾸로 그동안 배제되어왔던 다수 노동자의 정치를 복원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완은 ‘안철수 현상’이 한국 사회 매체 지형의 변화를 예고하는 전조라고 진단한다. 그는 그간 대선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을 꼼꼼하게 짚어보고 이러한 언론이 안철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또한 역으로 SNS라는 새로운 언론 환경으로 대변되는 안철수가 기존 언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김민하는 정치권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 안철수를 대입해 봄으로써 대선에 이르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6개월 전의 예측임에도 불구하고 총선 이후 정치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없는 현실에서 이 시나리오는 여전히 흥미롭게 읽힌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네 저자의 분석이 안철수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를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며, 저자들 역시 그럴 의도로 저술한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열광과 분노로 대변되는 무조건적 지지와 비판이 횡행하는 정치 과잉의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사태를 차근차근 읽어보려는 시도로서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고 있으며,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편집의 실수가 자주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안철수라는 충격파의 진앙이 채 식기도 전인 10월 25일 초판이 인쇄되었다. ‘안철수 현상’이 가져온 첫 가시적 결과물인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채 보기도 전에 출판된 것이다. 이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포착하기 위한 시의적절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의성에 너무 치중한 미처 잡아내지 못한 편집의 실수가 독서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이후 선거 결과에 실망하여 안철수를 다시 호출하는 대중의 요구가 거세질 이 시점에서 저자들이 건네는 충고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여기에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난 대중들의 요구, SNS의 영향력, 정당들 사이의 정치 역학의 변화 등 지난 6개월 동안 추가된 사실들을 덧붙여가며 책을 읽는다면 그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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