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맛] 이영훈,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단편소설의 맛



손보미, 김미월, 황정은, 김이설, 정소현, 김성중, 이영훈. 이게 다 무슨 이름일까요? 문학동네에서 주관하는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자들입니다. ‘내가 우리나라 소설 좀 보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김미월, 황정은, 김이설은 익숙할 겁니다. 본인 이름으로 적어도 세 권쯤은 발표한 작가들이니까요. 김성중까지 안다면 당신은 신인의 등장을 꽤나 두루 살피는 분이겠네요. 이 작가는 작년에 첫 단편집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세 사람 남았나요? 손보미, 정소현, 이영훈. 이들을 안다면 셋 중 하나겠습니다. 친인척 및 지인이거나, 문예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문예창작과 학생 혹은 관계자이거나, 지난 4월 말에 출간된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발 빠르게 읽은 소수정예 독자이거나.

국내 문학을 향유하는 층이 그만큼 좁습니다. 세계문학 깨나 섭렵한다는 독서가들도 ‘한국 소설은 재미없어.’라며 외면하는데요. 그 이유가 물론 내부에도 있겠지만 이미 그렇게 굳어진 외부의 분위기 또한 높은 벽입니다. 이른바 베스트 작가가 아니면 갓 등단한 신인들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지요. 그런데요. 모르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재밌는 소설이 많은데! 제가 이 더운 날에 자판을 두드려가며 열을 올릴 정도로 말이죠. 기왕 열 받은(?) 김에 셋 중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대상 수상자이자 [단편소설의 맛]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손보미는 열외. 정소현과 이영훈이 남았는데요. 후자로 하겠습니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정소현은 다음 순서가 되겠네요.) 어떤 이야기인지 맛을 한 번 보죠.
 

집요하게 비를 뿌리는 11월의 하늘을 향해 일곱 개의 다리가 뻗쳐 있었다. (251쪽)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엉덩이의 힘을 풀었다.
신분증이 달콤하게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279쪽)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중에서


때는 G20 세계정상회의를 개최한 11월, 장소는 “그녀 회사에서 가까운 삼성역”입니다. 남자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개 받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교제 신청을 할 생각”으로 역 근처 아케이드의 식당을 예약합니다.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결혼 상대로서 소녀시대의 혜영처럼 만만한 것이 마음에 들 뿐이지요. (이 소설에서 소녀시대는 우리가 익히 아는 S모 회사의 걸그룹과 유사하지만 멤버들의 이름이 다릅니다. 혜영은 그 중 가장 평범한 외모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헌데 문제는 그녀가 아닙니다. 바로 변의(便意)죠. 한 시간 늦는다는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복통이 시작된 겁니다. 하지만 아케이드 내의 화장실은 보안상의 이유로 G20 세계정상회의 개최 기간 동안 폐쇄된 상태. 남자는 소녀시대의 입간판 앞에서 마주친 경찰관과 함께 필사적으로 화장실을 찾아 나섭니다. 저 마지막 문장을 보면 아시겠지만 결국 똥을 싸긴 쌌어요. 과연 어디에?

일견 우스꽝스러운 이 소동극에는 칼날이 숨어 있습니다. G20 세계정상회의가 자아내는 도시의 분위기가 그렇고, 서로의 조건을 조율하는 관계가 그렇고, 자신의 변의조차 제때 해결할 수 없는 부자유가 그렇죠. 어쩌면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경찰관(을 자처하는 인물)의 입을 빌려 “그렇잖아요? 여기 어디서 대충 똥 싸도 되고, 굳이 만만한 사람에게 청혼하지 않아도 되고. 원래는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래서 소녀시대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모두가 아무것도 만만하지 않으니까. 이것저것 못 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 그렇지만, 좋아하는 건 공짜니까. 그래서, 그렇게 소녀시대가 좋은 거 아니에요?”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지금, 우리는 사실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요. 작가노트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다시 한번 찾아갔다. 아케이드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게 요즘 사람들의 표정이란 걸 생각하니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적고 있는 작가에게 그 답을 구해도 좋겠습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이영훈
1978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 <거대한 기계>가 당선되어 등단.

* 현재까지 발표 작품
<거대한 기계> | 《문학동네 2008년 가을호》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 《문학동네 2011년 봄호》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