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조이스 캐럴 오츠, 《좀비》 요즘 뭐 읽니?


사이코패스. 사람들은 이 어려운 용어에 꽤 익숙해졌다. 살인자. 사람들이 이 잔혹한 용어에도 꽤 무감해졌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떨까.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인 《좀비》에는 앞서 언급한 사이코패스/살인자가 등장한다. 그것도 화자로! 주인공 쿠엔틴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서른한 살의 백인 남성이다. 미성년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 중에 있으나 개과천선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쿠엔틴 월드를 만드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진정한 좀비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명령과 변덕에 복종할 것이다. “네, 주인님”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면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오직 주인님뿐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고 그런 존재일 것이다. 진정한 좀비는 ‘아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렇다’라는 말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두 눈을 맑게 뜨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것은 없고 그 뒤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심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좀비의 눈에는 공포란 없을 것이다.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기억이 없으면 공포 따윈 없을 테니까. (244쪽)


‘새벽의 저주’나 ‘워킹 데드’에 등장하는 그런 좀비가 아니다. 이 ‘좀비’는 “히치하이커, 부랑자, 쓰레기 같은 부류. (비쩍 마르거나 마약 중독자나 에이즈 환자만 아니라면.) 또는 시내에서 얼쩡대는 집도 절도 없는 흑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인간.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인간.”(45쪽)으로 오로지 자신만의 욕망만을 투사하는 대상이다. 그리하여 쿠엔틴은 납치한 목표물의 X(스포일러 방지!)를 절개하기에 이른다. 완전한 ‘좀비’를 만들기 위해서.

《좀비》는 미국 최고의 공포 소설에 주는 브램 스토커상 수상작이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뜻이겠으나, 어떤 독자는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모종의 단면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문득 그들의 표정을 들여다보고 싶다. 사이코패스/살인자만큼 무서운 쪽은 자신과 다를 뿐인 대상을 한 번쯤 꺼려본 적 있는 사람들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그들 사이에서 나고 자란 쿠엔틴을 소환해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