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5월 21일 북카트 에디터의 북카트


언제부턴가 만사에 심드렁해졌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의 저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아니면 이래도 쳇, 저래도 쳇입니다. 뭔가, 열정이 부족하달까요. 원인은 아무래도 극과 극을 오갈 뿐 중도를 모르는 제 성격 탓인 것 같은데요. 극으로 치닿는 열정이 힘들어 놓아버리고선 막상 불끈불끈 하는 감정이 줄어들고 나니 그 삶이 또한 권태롭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른 책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고요. 

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 | 문학동네 | 2006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인데요. 매순간이 오로지 한 남자의 생각으로만 가득 찬 여자의 내면 서술을 통해 이제는 사라져버린 열정과 욕망의 흔적을 기억으로 증언하고 이를 질문하며 끝내는 이별해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빠지는 것만큼 열정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으니, 아니 에르노의 시간을 경유하며 제 삶의 어디쯤에 있었던(있을) ‘단순한 열정’ 또한 꺼내볼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으로 담은 책은 《단순한 열정》의 짝꿍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립 빌랭의 《포옹》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실제 연인이기도 했던 필립 빌랭은 《단순한 열정》의 방식을 차용해 그녀와 나누었던 5년간의 사랑을 이 소설에 기록했는데요.  




필립 빌랭 | 《포옹》 | 문학동네 | 2001  


아버지가 읽고 있던 《단순한 열정》이 계기가 되어 독자와 작가로 만났고 이후 연인 사이가 되고나서는 필립 빌랭 자신이 《단순한 열정》에서의 아니 에르노의 입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깨닫고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거고요. 그러니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며, 기다리는 사람에서 기다리게 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겨간 아니 에르노의 모습을 보는 색다른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최정례의 시집, 《레바논 감정》입니다. 이건 제 짝꿍 희진씨가 “언니가 좋아할 것 같은 시집이에요.”라고 추천해준 책인데요. 책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게 아주 미세한 감각과 감정과 기억의 차이로 수만 갈래의 감상을 낳는 ‘시’인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최정례 | 《레바논 감정》 | 문학과지성사 | 2006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추천만으로, 그것도 시집을 덥석 골라 집은 이유는 그 사이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살포시(?) 드러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일하는 도중에 희진씨가 종종 네이트온을 통해 전해주던 시 선물이 죄다 좋았던 지라 일단 일말의 의심은 버려두고 과감하게 선택해볼까 합니다. 물론 한편으론, '어디, 희진씨가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두고 보자' 하는 심리도 없진 않습니다. 헤헷, 농담입니다, 희진씨!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