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어놓은 구절들]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접어놓은 구절들

 



아니 에르노 | 《칼 같은 글쓰기》 | 문학동네 | 2005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모든 지식뿐 아니라 교양, 기억 등이 모두 연루된 어떤 작업을 통해, 외양을 넘어서 나 자신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따라서 타인들에게로 귀착되지요.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작업’과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내가 어떤 것에서 치유되어야 한다면, 내게 그 치유는 오직 언어에 대한 작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달하는 작업, 즉 하나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습니다.” (79쪽)


글을 씁니다.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쓰면서 생각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생각의 기저에, ‘나’가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쓰면서 생각하는 ‘나’, 그 이전의 ‘나’. 나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나’에 대해서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또, 글을 쓰다 정작, 그 ‘나’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멈칫 하며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나’를 남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서, 덧대고 포장되지 않은 채 맨몸으로 언어화되어 있는 ‘아니 에르노’를 보게 됩니다.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것과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 모두를 드러냄으로써, 부끄러움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된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시·공간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현실일 수 있는 ‘아니 에르노’가 모두의 ‘그녀’가 되고, 또 내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자신을 세상에 투사해 스스로가 하나의 텍스트가 된 ‘한 사람’이 타인인 ‘나’에게로 귀착되어 옵니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글에 대해 글을 쓰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 글을 쓰고 있을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덧글

  • 2012/05/31 21: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2/06/04 18:23 #

    저도 언제부턴가 관심은 가지고 있었는데, 열린책들에서 재간되고 난 후 탄력을 받아서 이전에 나온 책들을 모조리 읽어가고 있어요.

    읽다가 느끼는 건데, 일단은 자잘하게나만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기를 객관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부러워요. 그런데도 글 속에서 아니 에르노가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이 화석화되지 않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까지도요.

    감정추이 님께서 원하셨다는 시리즈,,나왔더라면 저는 백프로 구입했을 텐데, 안타깝네요.ㅎ 윗선에 계신 분들은 어디나 그렇게들 반대가 심해요.ㅋ

    서서히 찌는 듯한 여름이 찾아올 것 같은데, 기운 잃지 마시고요!!

    -현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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