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아프다》 - 20세기식 트라우마 보고서 책, check, 책


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말한다. 어제는 코끼리를 봤어! 덩치가 되게 크고, 또…… 목격 장소는 동물원일 것이다. 그곳에 악감정을 가진 아이는 없다. 대개의 어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코끼리를 좋아하고, 그런 동물이 한데 모여 사는 장소를 즐겨 찾는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얄팍한 의미 부여를 걷어내면 동물원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행복한 장소가 아니다. 사람-동물을 감금의 동조자 혹은 희생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불행의 근원은 약 250년 전 식민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1652년,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했다. 강력한 시장경제 및 무기 도입과 동시에 마구잡이로 포획된 야생동물은 전리품, 노예, 광대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 또한 야생동물과 공존하는 삶을 통째로 유린당했다. 그 피의 역사 위에 동물원이 세워진 것이다.

식민시대는 지났지만 폭압의 잔재는 사실상 남아 있다. 불법 포획이 여전히 계속되는 가운데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군은 20세기 들어 급증했다. “내가 소속된 종, 내가 속한 문화 그리고 나 자신이 동물들에게 가한 잔혹함과 공포”(28쪽)에 그들이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다. ‘상처’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사람을 대입해 보자. 어미가 잔혹하게 살해되는 것을 보거나, 온종일 족쇄를 찬 채 무거운 짐을 운반하거나, 길들인다는 이유로 채찍질 당한다면 그 당사자의 마음은 온전할까. 평생을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이것이 사람이라는 종이 지배하는 20세기 이래의 모습이라면, 동물의 비극을 ‘20세기식 트라우마’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다.

생태학자 G.A.브래드쇼는 많은 동물 중에서도 코끼리에 주목했다. 남아공의 야생동물복귀 프로젝트 때문에 연구차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을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G.A 브래드쇼는 그곳에서 코뿔소를 상습적으로 죽이는 한 수코끼리의 이상행동에 대해 듣게 된다. 코끼리는 벼랑 끝에 몰리지 않는 한 다른 종을 공격하지 않는 온순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 의문을 가지게 된 G.A 브래드쇼는 코끼리 트라우마 연구를 진행하고, 《코끼리는 아프다》를 쓰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이 책은 ‘20세기식 트라우마’에 대한 보고서다. “코끼리는 누구인가? (…) 아마도 코끼리를 ‘무엇’이 아닌 ‘누구’로 인식한다는 발상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35쪽)라고 말문을 연 1장은 트라우마 알기에 앞서 “현대사회가 강요하는 일생에 걸친 차별화 작업”(19쪽)을 거부하고 코끼리를 사람과 동등한 생명체로 인지하기를 권한다.

더 이상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인간은 얼마나 다른가’라는 명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이 다른 종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깨닫고 감탄하게 된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안에서뿐만 아니라 해피와 같은 코끼리들의 얼굴에도 반영되는 것이다. (59쪽)

이러한 관점은 12장에 걸쳐 구체화된다. 두세 살쯤 눈앞에서 가족을 잃고 오랫동안 철창에 감금되었던 ‘제니’라는 코끼리의 병력을 (코끼리임을 밝히지 않고) 전달 받은 정신건강 전문의 다섯 명의 소견을 기록하고 있는 6장의 내용은 특히 인상적이다. 전문의들은 ‘제니’의 이상행동을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나같이 진단한다. “이러한 모든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 대한 적합한 진단은 ‘마음이 완전히 부서졌다’ 또는 ‘산산조각났다’일지 모른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G.A브래드쇼는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가 남긴 “생명체에 자행하는 행위를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은 나치다.”(371쪽)라는 말을 빌리면서, 20세기에 이르러 코끼리(를 비롯한 동물)의 현실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태인에 비견됨을 거듭 강조한다. 나치는 인류의 트라우마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상처 입은 내면을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이 보고서를 접한 이들 또한 변화할 수 있을까.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코끼리는 아프다》라는 제목을 읽듯 말하기는 쉬울 것이다. 중요한 일은 그 다음이다.

실천을 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나 지식의 발견을 기다리는 것은 그만두자. 지금 당장 헌신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연구할 대상조차 남지 않게 되며 텅 빈 거울만이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코끼리는 이미 손을 내밀었다. 이제 우리가 그 손을 잡을 때이다. (449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