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재활용》 - 죽음 이후의 쓸모 책, check, 책


죽으면 사실상 그 삶은 끝이다. 어딘가로 갈 수 없고, 누군가를 만날 수 없고, 무엇도 될 수 없다. 여느 때보다 단정한 모습으로 어두운 관에 누워 있을 뿐이다. 가까이에는 슬픔과 추억에 잠겨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은 아무도 송장·사체·시체·시신 등의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산 자를 대하듯 ‘돌아가셨다’라든가 ‘고인(故人)’과 같은 표현으로 예를 갖춘다. 허락된 애도의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관이 사람들의 일상을 떠날 때다. 또 다른 부고를 받거나 본인의 수명이 다하지 않는 한, 죽음은 당분간 유보된다. 삶과 무관한 듯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많은 ‘고인(故人)’들이 사후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이전의 삶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지라도 ‘고인(故人)’은 하나의 유용한 사체로 산 자들의 세계 곳곳에서 활약한다. 수술 연습용, 충돌 실험용, 범죄 분석용, 장기 이식용, 심지어 퇴비용까지! 이 다양한 쓸모를 낱낱이 취재·기록한 작가는 미국 저널리스트 메리 로치다. 그녀는 난생 처음 본 사체 이야기와 함께 《인체재활용》의 서막을 연다.

그때 나는 서른여섯 살이었고 시체는 여든한 살이었다. 어머니의 시신이었다. 여기서 소유격을 써 ‘어머니의’라고 표현한 것이 문득 눈에 띈다. 마치 우리 ‘어머니였던’ 시신이 아니라 어머니 ‘것’이었던 시신이라는 의미로 쓴 것 같다. 어머니는 시체였던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었다가 사람이 아니게 되면 시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시신은 어머니의 껍데기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10쪽)

메리 로치는 사체의 의미를 받아들였다. 또한 궁금해졌다. 또 다른 죽음이 장례식장 아닌 과학의 영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사체의 역사는 기원전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부학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런가 하면 12세기 아라비아에서는 미라가 된 사람을 약처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해부용 혹은 의료용으로 사체를 사용해온 역사가 꽤 오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죽은 사람들에게도 뛰어난 것이 한 가지 있다. 고통을 받아 넘기는 재주다.”라는 메리 로치의 말처럼 지금도 사체는 산 자들을 대신하고 있다. 재교육이 필요한 성형수술 의사에게는 머리를, 보다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고자 하는 기술자에게는 사지를, 탄도학이나 인체 부패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온몸을, 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는 장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쓸모 앞에서 생사의 경계는 유연해진다. 뇌사자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심장 이식 담당 의사가 답하듯 “삶과 죽음은 이분법적이지 않”다. 사람은 슬픔과 추억의 근원인 동시에 모두가 하나하나의 “생물학”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시작과 끝, 태어나고 죽을 때 기억하게 되”“나머지 기간에는 그 사실을 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체로 남는 것이 “생물학”의 결론이다. 《인체재활용》은 이 점을 상기시킨다. 삶의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 더불어 죽음이 또 다른 삶을 구한다는 과학적 진실을 말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 (hebong200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