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생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서 블로거, 책을 말하다


이런 일들은 난 잘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야. 바다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진정한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79쪽)

팔십사 일 동안 무엇도 낚지 못한 늙은 어부가 돛단배를 타고 홀로 나흘 밤낮을 거대한 청새치와 싸운다. 《노인과 바다》의 이 짤막한 이야기는 머리와 등뼈만 남아버린 청새치를 등지고 초라하게 끝난다. 하지만 항해가 끝난 후 지쳐 잠든 노인의 모습을 보며 소년은 눈물을 흘리고 독자는, 인간과 인간의 생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또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그리고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는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물음과 나름의 대답을 전하고 있는가?

노인은 작은 배 위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대화의 상대로는 청새치가, 작은 새가, 바다가 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노인 스스로에게서 뿐이다. 포기에 대한 유혹과 갈등은 오직 노인의 입만을 빌어 계속된다. 생에 대한 끝없는 투쟁에 있어 가장 큰 적도, 의지할 수 있는 존재도 결국 스스로뿐인 것이다. 물론 생이 고독한 싸움이라는 것은 흔한 수사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의 그것은 여타의 수사와는 다르다. 바다 위의 노인은 혼자이지만 혼자만은 아니고, 외롭지만 외롭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노인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소년이 있다. 또 잠시 뱃머리에 내려앉은 작은 새가 있으며 저 멀리 날아가는 물오리떼가 있다. 라디오와 신문에는 위대한 야구선수 디마지오가 있고 오래된 기억 속 자랑스러웠던 지난 과거와 함께 잠자리의 머리맡에는 부인의 사진이 있다. 그뿐 아니라 노인과 돛단배를 끌고 먼바다로 나아가는 청새치 역시 노인과 함께하는 존재다. 다만 저 달과 해에 이르지 못하는, 그래서 생을 위해 친구와 싸워야 하는 존재의 논리에 끼어버렸을 뿐. 바다 위에서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피를 깨끗하게 짜냈으니 짠 바닷물이 곧 아물게 해줄 거야. 거짓 없는 이 멕시코 만의 짙푸른 바닷물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치료약이야. 내가 할 일은 오직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뿐이야. 두 손은 제 할 일을 다했고 배도 잘 나아가고 있어. (103쪽)

노인에게는 허락된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청새치의 생을 위한 투쟁을 줄 하나에 의지해 온 몸으로 받아내고, 청새치를 노리는 상어의 미간 사이를 정확하게 노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노인에게는 청새치의 머리와 등뼈만이 전리품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노인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청새치는 물론 청새치의 살점 한 입과 생을 맞바꾸어야 했던 상어에 비한다면 노인에게 허락된 달콤한 사자의 꿈은 훌륭한 보상인 것인지도 모른다.

소년은 드물게 보다 많은 것이 허락된 존재다. 소년은 젊고 지나온 날에 비해 지나야 할 날이 많다. 소년은 누구보다 많은 것들을 낚고, 낚아갈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아직 노인이 필요하다. 노인의 경험과 기술을 배워야 하며, 위대한 디마지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아니, 이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소년은 노인이 필요해서 노인의 경험과 기술을 배우고, 위대한 디마지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소년에게는 노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년에게 노인이 필요해서, 노인은 오늘을 살아간다. 팔십사 일 동안 무엇도 낚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를 무시해도 노인에게는 잠자리와 저녁을 챙겨주는 소년이 있다. 희망과 함께 어제와 내일을 공유하는 소년과 노인. 노인은 저물어가는 순간까지 소년을 위해 타오르는 존재이며 소년은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푹 쉬어라, 작은 새야.” 그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57쪽)

힘겹고 때로는 대가리와 등뼈만 남아버린 청새치처럼 배반적인 삶일지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은 다르다. 나흘 밤낮을 청새치와 싸우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 문학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직접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갔던 헤밍웨이가 목격하고 생각한 것을 《노인과 바다》로 써내었듯이.

생은 위대한가? 그것은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생은 존엄하다. 우리가 생에 대한 분투를 그치지 않는 한, 모든 생은 그러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분투의 결과물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노인이 청새치의 머리와 등뼈만을 가지고 돌아온다면 소년은 자신이 잡은 것을 나누어줄 수 있다. 그리고 소년과, 더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 잡아 온 것을 보며 언젠가 청새치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존재의 진실한 거래는 이토록 아름답다.

희망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노인은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난 그건 죄악이라고 믿어. 죄악 같은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자, 그는 생각했다. 죄 말고도 지금은 문젯거리가 충분하니까. 게다가 나는 죄가 뭔지도 아는 게 없잖아. (109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몽상과 위로'님은?
읽는 것만큼이나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거의, 백수. 세계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