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의 질문은 계속된다 - 마이클 샌델 서점에서 만난 사람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이미지 제공 | 출판사 와이즈베리 


6월 1일, 마이클 샌델의 기자간담회가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있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한국에서 동시에 출간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기념한 방한이었습니다. 한국사회의 뜨거운 관심과 사회적 논의를 낳았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이어, 도덕과 윤리 바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시장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제안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시대에 사고 있다. 지난 30여 년을 거치면서 시장 및 시장가치가 유례없이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상황을 깊이 생각하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와이즈베리, 2012, 22쪽


시장 경제가 통째로 집어삼킨 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위협하는 삶들입니다. 이런 상황에, 마이클 샌델은 우리의 질문을 받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대답은 정답이 아닌 또 다른 질문에 불과합니다. 그는 사실, 대답하기보다 질문하기 위해 한국에 온 사람이니까요.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수업은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명실공히 이 시대의 최고 석학이자 철학계의 록스타이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는 시장 경제 하에서 시장 사회로 변모했다. 시장 경제는 경제 활동을 조직하고 정리하는 도구로, 많은 사회에 부와 번영을 가져왔다. 하지만 시장 경제가 곧 시장 사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과 시장가치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영역으로 팽창한 것”이 시장 사회며, 거의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는 사회다.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메시지는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돈과 시장이 공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영역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시장이 그 효과를 가장 잘 발휘하는 것은 물질적인 재화의 거래를 지배할 때다. 그러나 이러한 돈과 시장 가치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 교류, 시민으로서의 생활까지 그에 의해 정의되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 가치의 영역은 어디까지고, 이 시장 가치로부터 보호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를 토론해야 한다. 

교육이나 의료, 시민으로서의 생활과 같은 삶의 영역들은 돈이나 시장 가치보다 소중한, 보호해야 할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돈으로 거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 부모가 자식의 입학 허가권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지, 양질의 의료 혜택에 대한 접근권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지, 정치적인 영향력이나 공직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지, 논의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성과와 번영을 누린 사회는 반드시 이러한 것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런 질문들의 해답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돈과 시장 가치의 적절한 역할에 대해 공적 토론이 필요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목적이 바로,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다. 

시장 경제를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와 그것을 내면화하는 사회에 대해 말했는데, 개인이 시장주의적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노력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교수님의 의견은 어떠한가?
(교보문고 허영진) 

맞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요한 프레임 중 하나를 짚어주었다. 사실 우리는 실질적인 재화를 교환하지 않은 일상 생활에서 있어서도 시장 가치, 시장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많이 내면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우리 삶의 질과 우리가 맺은 관계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사물과 같이 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 중 첫 번째는 이렇게 시장 가치를 내면화하는 우리의 경향에 주목하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첫 단계다.

기여입학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사람은 찬성하기도 한다. 한 명의 부자 아이를 입학시켜 그 돈으로 더 많은 학생에게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는 반값 등록금에 대한 큰 움직임이 있고, 캘리포니아 역시 그러했다. 이 두 문제에 대한 교수님 의견은 어떠한가?
(EBS 이윤녕 기자)

이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다루고 있다. 기여입학제를 반대하는 두 가지 입장이 있지만 장점 또한 존재한다는 게 이 문제의 딜레마다. 그러므로 해법은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 우리가 고려해야 될 중요한 사안 중 하나는 대학의 이익을 위해 기여입학제 자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다. 

공정성을 근거로 기여입학제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부유한 집안의 아이보다 성적이 우수하지만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기여입학제가 불공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반대 이유는 고등교육인 대학이라는 재화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돈으로 인해 대학이 추구하는 진실성, 즉 배움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값등록금 문제를 얘기하자면, 등록금은 모든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대학생들이 여기에 부담을 느껴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내 생각에 이런 등록금 부담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기여입학처럼 많은 돈을 내는 사람에게 대학 입학을 허가해주는 방식보다는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교육이 가장 실패한 영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특히 사교육이 문제다. 양질의 교육과 돈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교수님이 유투브에 여러 강의를 올려놓은 것으로 봤을 때 그런 화두에 의견이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포커스)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현 상황보다 교육에 대한 접근이 쉬운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돈 없이도 말이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은 정부와 대학이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은 재정적인 자원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외에도 우리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새로운 교육 방법이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실험을 했었다. 내가 가르치는 ‘정의’ 강좌를 무료로 개방한 것이다. 우리는 시간과 돈과 많은 노력을 들여서라도 이 강연을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계 어느 곳에서든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내가 희망하는 것은 다른 대학, 다른 강연들 또한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고등교육은 사유 재산이 아닌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내 신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어린이 동아 ? 어린이 기자) 

아주 좋은 예를 잘 말해주었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우리에게는 누구나 24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이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선택하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다. 그 외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2가지를 추가하자면 가족 관계와 가족 구성원의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우정’이다. 이런 것들은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다. 

교수님이 이 책에서 공익이나 공공선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뉴스위크 이기준 기자) 

공동의 이익은 정부의 목표, 민주주의 사회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정의다. 그러나 공동선, 공공의 이익에 살을 붙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마다 공공선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정의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잘 번영하고 있는 지 측정하는 기준 중 하나가 공동선이고, 이 공동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견들이 공적 토론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경우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개의 정치적 논쟁이 권력 다툼, 이익 다툼으로 흐르고 있는 까닭이다. 정치 분야에서 돈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를 경제를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경제가 민주주의 정치를 우리 사회에서 밀어내고 있다. 경제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촉구하고 장려하는 것이 바로 좀 더 바람직한 공동선을 위한 공적 담론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인들은 교수님 말씀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교수님 책을 통해  ‘공동 경쟁’이 큰 화두가 되었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거나, 대형마트 시간을 제어하는 등의 논의가 있었다. 여기엔 찬성과 반대 의견이 공존한다. 이와 관련해, 대중을 위한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자신문 김용주 기자) 

미국 역시 1920, 30년대 동일한 논쟁이 있었다. 말씀하신 한국의 대기업, 중소기업 문제, 소상권 보호에 대해 들었다. 항상 반대하는 근거는 소비자에게 좀 더 값싼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소비자들에게 최저가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유일한 가치이면 그러한 정책을 반대할 수 있는 합당한 사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낮은 소비자 가격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지역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상권 역시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으로서 적절한 정책이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 잡힌 방법으로 함께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소기업 역시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하고 지역 상권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짚어 주셨는데, 그게 시장 경제와 시장 사회의 문제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시장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 ‘정의’의 정의가 나와있지 않고 스스로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정의는 꼭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교수님의 의도한 바인지 궁금하다.
(MBC 라이프 매거진 황재필 기자)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정답은 얻을 수 없었고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새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내 나름의 견해는 있다. 이 견해들이 책에 종종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내 목적은 독자에게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보자는 것이었다. 또한 내 의도는 ‘정의’, ‘돈과 시장가치의 영역’에 대한 공적 토론을 장려하고 영감을 주고자 했던 게 크다. 그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첨언을 하자면 실제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민을 타인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해서는 안 된다. 같이, 공적 자리에서 고민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목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에서 학교 폭력이 심각한 문제다. 몇몇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목격하고도 모른 체 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님은 이러한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지?
(어린이 동아 ? 어린이 기자)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학교 당국이나 사회는 왕따 문제나 학교 폭력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교 내에서 왕따 문제를 억제하고 피해자를 목격했을 때 도와줄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고 그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한 학생만으로 왕따나 학교 폭력 문제를 예방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놀이터나 운동장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피해자를 위해 도움을 주고자 하는 공동의 의지를 보이면 이러한 문제를 훨씬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서의 문화를 바꿔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낄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예전에 시민 토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시민에 속하지 않는 이민자 등에 대해 질문했을 때 시민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불법 이민자들을 모두 시민으로 포섭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포섭한다고 해도 수용에도 역시 한계가 있다. 제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토론의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
(한국일보 이윤주 기자 질문) 

여기에는 두 가지의 별개 이슈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민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민자들도 어떤 조건 하에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다. 내가 알기로는 어떤 국가도 완전히 이민을 개방하지는 않았다. 모든 사회가 스스로 어떤 조건 하에서 이민자를 수용할 것인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 이슈는 그 국가의 기존 시민들이 이민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이다.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이민자에 대한 공정한 대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예를 들어, 이민자들의 고용, 교육 기회 접근 자격, 의료 혜택 자격 등에 대한 논의는 이민자 대우와 관련된 것으로, 이민자들이 언제 어떻게 시민권과 투표권을 취득할 것인지와는 별개의 이슈다. 모든 곳에서 이런 공정한 이민 정책을 수립하고자 할 때, 투표권을 가진 기존 시민에 비해   투표권이 없는 이민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위한 정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책들은 항상 토론을 하자, 고민을 하자라는 전제 하에 진행되는데, 이는 사실 합의가 되지 않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토론 자체가 실질적으로 어떤 효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도서 11번가 이지미) 

공적 토론이나 논의가 합의에 이르지 않는다 해도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토론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민주 시민 의식을 고취하는 습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설사 우리가 이견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건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면 그만큼 다양한 이견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적 토론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