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맛] 윤해서, <아> 단편소설의 맛

사람은 어떤 대상을 규정하는 ‘범주’를 저마다 설정합니다. ‘범주’를 일상적으로는 ‘이 정도’나 ‘최소한(최대한)’으로 바꿔 말하곤 합니다.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돼.’ 혹은 ‘최소한 시간약속은 지켜야지.’와 같은 활용형을 보세요. ‘범주’는 이처럼 무언가를 선택·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재밌는 건 굉장히 유동적이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상대에게 홀딱 반하거나, 그 상대가 약속보다 한 시간을 늦어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간 나름의 ‘범주’로 쌓은 당신의 세계는 이미 격변한 겁니다.

같은 의미에서 독서는 인식의 ‘범주’를 매번 새롭게 정해 나가는, 그러니까 확장하는 행위입니다. 소설을 읽는 일도 그래요. 말은 안 해도 다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은 이런 거!’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을 터. 하지만 세상은 넓고 소설은 많습니다. 지난 [단편소설의 맛]에서 소개한 <위험한 비유>를 기억하시나요?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렇듯 ‘범주’가 흔들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맛보고 말았습니다. <아>라는 단편소설을요.



5. 고프다

긴 오후를, 단단한 저녁을, 무거운 밤을,
다시 찾아온 새벽과 낯선 아침을
온통 한 얼굴의 여자와 보냈다.
이 도시의 말로.
나는 빛도 거리도 조절하지 못한다.
모든 허기로부터. 깊은 어둠 속에서.
내가 내 죄를 사할 수 없다.
말로의 말로. (287쪽)

59. 희미하다
이 도시의 말로. 내가 처음 쓴 문장.
(…)
빠까 안개 (356쪽)

《문학과사회 2010년 여름호》중에서


어떠세요? 저는 현기증이 났어요. ‘범주’라는 성이 또 다시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아>는 말에 관한, 그 말들이 모인 소설에 관한, 그 소설을 쓰는(읽는) 인간에 관한 소설입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 놓기 위해 윤해서가 끌어온 것은 ‘말로’라는 대상과 ‘말로의 말’이에요. 번호를 매겼음에도 분절된 듯 보이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나’는 끝없이 이야기해야만 하는 주술사처럼 무수한 말을 중얼거립니다. 이 모습은 꼭 “소설이 뭔가, 그러면 시는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데 그렇게 가다 보니 인간은 뭐지? 하는 식으로 자꾸 범위가 커져서” <아>를 쓰게 됐다는 소설가 자신 같습니다.

그림, 도표, 타이포 등 문자 이외의 이미지가 넘나드는 이 소설을 가리켜 ‘이런저런 내용이에요.’라고 단정하지는 못하겠어요. 사실은 저도 재차 읽어 볼 참이거든요. 단,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을 이루고 있는 언어의 가장 작은 단위로 내려가보자는 생각”을 한다는 윤해서가 몸소 보여주듯 소설은 ‘언어로 쓴’ 결과물인 동시에 ‘언어를 쓰는’ 행위이며, 그 행위가 낡은 ‘범주’들을 과감하게 돌파하고 있다는 것을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윤해서
1981년 경기도 부천 출생.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 현재까지 발표작
<최초의 자살> | 《문학과사회 2010년 여름호》에 게재
<?다> | ‘문장웹진 2010년 10월호’에 게재
<아>
| 《제2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