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변방을 노래하는 사람, 사람들 - 신영복 북콘서트 서점에서 만난 사람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지난 6월 15일 저녁, 과중한 업무들을 해치우자마자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누굴 좀 만나기로 했거든요. 헐레벌떡 도착한 약속장소 마포아트센터는 똑같은 책을 손에 든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우리만의 약속이 아닌 줄은 애초에 알았지만 이 정도 인기인(!)이었다니. 다른 사람들에 질세라 우리는 자리를 잡고 만인의 연인인 그 분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분은 이윽고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아, 이제는 정확히 알려드릴게요. 바로 신영복 선생님입니다.


신영복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 정경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복역했다.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되었으며, 그 후 성공회신학대학에서 경제학 및 한국사상사를 강의했다. 2006년 말에 정년퇴임했고, 퇴임당시 소주 포장에 들어가는 붓글씨를 그려주고 받은 1억원을 모두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하였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과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하고 있다. 

지은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 1, 2》(1998),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04)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사람아 아! 사람아》(1991), 《노신전》(1992, 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1994, 공역) 등이 있다.

 

이날 북콘서트는 《변방을 찾아서》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열혈 독자뿐만 아니라 사회를 맡은 고민정 아나운서, 도종환 의원, 김진업·박경태·김창남 교수가 활동하는 밴드 더숲트리오, 뮤지션 시와가 그 시간을 함께해주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두루두루 모여든 것을 보며 세상 모든 변방의 연대를 그려 보았습니다. 또한,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들의 역할과 자각이 중요함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에 이어 진행된 대담과 공연, 그 뜨거운 현장을 공개합니다.

강연 엿보기 




중심부에 들어가면 다른 생각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넓은 광야로, 벌판으로, 변방으로 가야 합니다. 길을 가는 자, 흥하리라. 성을 쌓는 자, 망하리라. 변방은 대단히 좋지만, 변방이 창조적일 수 있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필요합니다. 바로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멕시코의 청년들은 모국이 낳은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무척 높이 평가해요. 멕시코는 우리나라보다 못 살지만 자기 나라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어요. 피카소에게 콤플렉스 가지지 않은 미술가. 피카소와 결별하고 거실에서 광장으로 그림을 갖고 나온 사람. 그 사람들 문화의 기본적인 코드가 ‘아버지 죽이기’에요. 유럽으로부터 미련 없이 결별하는 것. 남미에서 많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입니다. 변방의 창조성. 중요한 것은 중심부의 논리와 담론에 갇혀 있는 우리들의 생각을 깨뜨리는 겁니다. 철학은 망치로 하는 것이다!

여러분과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말이 ‘야심성유희’입니다.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 한낮에 훨씬 더 분명하게 사물을 바라볼 것 같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야 몇억광년 너머의 별들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변방이 그런 것이죠. 시간과 공간, 우리 사회가 이 담론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까. 여러분들이 한 번쯤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대담·공연 엿보기



신영복 | 변방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성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중심부 내에서도 변방이 있을 수 있고, 변방에서도 중심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변방이라는 것은 특정한 카테고리를 의미한다기보다는 현재 상황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지향성을 갖는 그런 관점을 변방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변방에 대한 다이나믹한 적극적 의미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변방에 있다는 사실이 결코 주변부나 사회적 약자로 직결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변방은 굉장히 자유롭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곳. 역사적으로도 그랬어요. 변방이라는 것은 자기의어떤 처지를 뛰어넘어 보다 먼 미래,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끌고 나가는 공간이 변방입니다.



도종환 | 저는 태어난 곳, 살아온 곳, 작품을 써온 곳이 모두 변방이었습니다. 비주류죠. 이제 중심에 온 지 한 10일 됐어요. (웃음) 그런데 그 자리에 같이 있는 분들이 제가 중심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속에서도 비주류이고 변방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어도 주류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이렇듯 변방이고 비주류지만, 주류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변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공간, 그런 사람이라는 점에서 변방은 참 중요합니다.



더숲트리오 | 연구를 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을 늘 만납니다. 학문의 대상으로 만난 분들이지만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변방이라는 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변적이죠. 그러니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또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거죠. 주류가 저절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변방이 각성하면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죠. 역사라는 게 그런 식으로 변해왔다고 선생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는데요. 변화하는 변방, 그 변방의 변화를 통해서 함께 변하는 방향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주인이니까 우리가 변해야 하는 거죠. 



시와 | 저는 지난주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었는데요.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어요. 마음에 남는 이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서예의 덕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서여야라는 근원이 있다. 무릇 글씨는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다는 것은 물론 글씨의 형식과 내용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지만 그러한 형식과 내용의 조화뿐만 아니라 서예란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고민을 담아야 하고, 그 글씨를 쓴 사람이 그 속에 담겨야 한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옳다.” 저는 이 문장의 글씨라는 자리에 제가 부르는 노래를 넣어 봤어요. 그래서 제가 부르는 노래와 노래를 부르며 활동하는 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헌정하는 노래를 부르는 시와는 아름다웠습니다. 더숲트리오와 합주한 노래를 끝으로 시와가 퇴장한 후, 바통을 이어 받은 더숲트리오는 밤샘 공연까지 불사할 기세로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 세시봉 공연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는데요. 비록 그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지는 못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변방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함께 기억할 수 있겠습니다. 구전될수록 오래 기억되는 것이 노래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변방의 가치를 소문낼 차례겠지요?